전세로 살다 보면 계약서에는 없던 상황이 종종 생깁니다.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었는데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합니다. 이때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고,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하는지 모호해서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에서는 실제로 자주 발생하는 세 가지 상황을 기준으로, 전세 보증금 일부를 주고받을 때 꼭 챙겨야 할 핵심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전세 보증금 증액이 필요한 경우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살고, 집주인 역시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면 보통 묵시적 갱신으로 봅니다. 이때 전세 시세나 관리비, 금리 등이 변하면서 보증금을 올리자는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작정 올려주기보다, 조건을 명확히 남기는 것입니다.
우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금액과 시기를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변 시세, 집 상태, 기존 계약 조건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조율하는 것이 좋습니다. 합의가 되었다면 가능하면 간단한 증액 합의서를 쓰거나, 기존 계약서에 특약 형식으로 추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실제로는 “그냥 계좌로 더 보내드릴게요”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몇 년 뒤에 기억이 달라지면 증빙이 없어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증금 증액분을 지급할 때는 계좌이체 내역만으로도 어느 정도 증거가 되지만, 임대인 이름과 금액, 날짜, 용도(보증금 증액분)를 명확히 적은 영수증이나 확인서를 받아 두면 더 좋습니다. 계약 기간, 보증금 총액, 증액일 등도 함께 기재해 두면 나중에 새로 전세를 빼거나 대출을 받을 때 도움이 됩니다.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
살다 보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조금 줄이고 그 대신 월세를 올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리가 오를 때나 집주인이 자금이 급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임차인 입장에서 목돈이 필요해 먼저 보증금 감액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전세에서 반전세 또는 월세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조건을 훨씬 더 꼼꼼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먼저 보증금을 얼마나 줄이고, 그 대신 월세를 얼마로 할지, 관리비 성격의 비용은 별도로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이 내용은 단순 구두 약속으로 끝내지 말고, 기존 전세계약을 기반으로 한 “계약 변경 합의서” 형태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합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감액 후 보증금 총액
- 새로운 월세 금액과 납부일
- 보증금 일부를 반환하는 날짜와 방법
- 기존 계약의 다른 조항(기간, 원상복구 의무, 중개 수수료 부담 등)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여부
집주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줄 때에는 계좌이체 내역을 남기고, 임차인은 그 금액이 “보증금 일부 반환”임을 확인하는 영수증 또는 확인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월세로 전환되면 추후 분쟁에서 임대차 보증금 규모와 차임 수준이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언제부터 얼마로 바뀌었는지’가 문서로 명확히 남아 있어야 합니다.
계약을 중도 해지할 때 일부만 보증금을 돌려받는 경우
이사를 갑자기 앞당겨야 해서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특약 때문에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흔합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 사정으로 중도 퇴거 시 중개보수는 임차인이 부담한다”거나, “잔여 기간의 일정 비율을 위약금으로 공제한다”는 특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특약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며, 과도하게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은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계약 해지 시점과 조건을 집주인과 분명히 합의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거주하고, 열쇠를 넘기는 날을 기준으로 임대차가 종료되는지, 새 세입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누구 책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가급적 문자나 메신저, 이메일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후 보증금을 정산할 때는 공제 항목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의견 차이가 자주 생깁니다.
- 원상복구 범위: 통상적인 사용으로 인한 도배, 바닥 마모 등을 임차인 부담으로 돌리려는 경우
- 중개보수 부담: 법정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
- 위약금 성격의 공제: 잔여 기간 전체 월세를 요구하는 등 과도한 청구
집주인이 공제하려는 항목과 금액은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설명을 요구해야 하며, 가능하면 견적서나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받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공제 후 남은 보증금을 지급받을 때에는 “어떤 항목으로 얼마가 공제되었는지”를 정리한 반환 명세서를 요청해 보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전세 보증금과 관련해 공통으로 살펴봐야 할 것들
전세 보증금 일부를 주고받는 모든 상황의 출발점은 결국 계약서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존 임대차 계약서를 다시 꺼내 보증금, 기간, 해지, 위약금, 특약 조항을 차분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대충 넘겼던 문구 하나가 실제로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 내용을 구두로만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믿고 이야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달라지고, 당사자가 바뀌는 일도 생깁니다. 가능하면 간단한 메모라도 서로 서명해서 남기고, 중요한 변경 내용은 계약서에 반영하는 편이 분쟁을 예방하는 지름길입니다.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연락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내용증명 우편을 활용해 의사표시와 요청 내용을 공식적으로 남겨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는 나중에 법적 절차로 넘어갈 경우 “언제 어떤 요구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상황이 복잡하거나 금액이 크다면, 공인중개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 현재 계약 구조와 선택지를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집주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전세 보증금은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급하게 처리하려다 보면 나중에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한 번 더 읽어 보고, 한 번 더 확인하고, 가능하면 문서로 남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