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을 처음 받았을 때, 머릿속이 꽤 복잡해졌습니다. 한동안 고생해서 모인 돈이라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서는 IRP 계좌로 옮기면 세금 혜택도 받고 노후 준비도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지만, 막상 알아보니 은행이랑 증권사 중 어디를 골라야 할지부터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수수료, 상품 라인업, 원리금보장, 실적배당 같은 단어들이 잔뜩 나오는데, 하나씩 정리하지 않으면 더 헷갈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직금을 IRP(개인형 퇴직연금)로 옮길 때, 어떤 기준으로 은행과 증권사를 고르면 좋을지 차근차근 다시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IRP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어떤 점을 따져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였습니다.

IRP 계좌, 기본부터 다시 짚어보기

IRP는 직장에서 받는 퇴직금을 바로 소비하지 않고, 따로 모아두면서 굴릴 수 있게 해주는 계좌입니다. 여기에 본인이 추가로 돈을 더 넣을 수도 있고, 그만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퇴직금 + 추가 저축 + 세금 혜택 + 노후 준비”를 한 번에 묶어놓은 통장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다만 이 계좌에 넣은 돈은 마음대로 자주 빼 쓰기 어렵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연금 형태로 나중에 나누어 받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중간에 빼면 세금 불이익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IRP는 “언젠가 꼭 필요하지만 당장 쓰지 않을 돈”, 즉 퇴직금 같은 자금을 묶어두기에 잘 맞습니다.

IRP를 고를 때 꼭 살펴볼 다섯 가지 기준

IRP 계좌를 어디에서 만들지 정할 때, 여러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도 결국 핵심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수수료 구조

IRP는 짧게 쓰고 끝나는 계좌가 아니라 수십 년을 가져갈 수 있는 계좌입니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보이는 수수료가 결국 수익률에 큰 영향을 줍니다. 보통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 계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드는 운용관리수수료, 자산관리수수료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비대면 온라인으로 계좌를 만들면 은행이든 증권사든 이 부분을 면제해주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증권사들은 온라인 IRP 수수료를 사실상 거의 받지 않는 곳이 많고, 은행들도 이에 맞춰가는 추세입니다.

둘째, 계좌 안에서 실제로 투자하는 상품의 수수료입니다. 예를 들어 펀드 보수, ETF 매매 시 발생할 수 있는 수수료 등은 IRP 계좌 수수료와는 별개입니다. 계좌 자체 수수료가 0원이라도, 어떤 상품을 고르느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꼭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2. 상품 종류와 폭

IRP 계좌 안에서 무엇에 투자할 수 있는지는 금융회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원리금보장상품입니다. 정기예금, 적금처럼 약속된 이자와 함께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는 식의 상품입니다. ELS 중에서도 원금보장을 조건으로 설계된 일부 상품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ELS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해서, 실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취급되는지 꼭 다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다른 하나는 실적배당상품입니다. 펀드(국내·해외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 TDF 등), ETF(상장지수펀드), 리츠(부동산투자회사)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함께 변동되는 상품들입니다. 이쪽은 장기적인 수익률을 더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IRP를 어디에 만들든, 본인이 원하는 상품을 충분히 고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너무 안정적인 상품만 있으면 수익을 올리기 어려울 수 있고, 반대로 변동성 큰 상품만 잔뜩 있으면 마음이 불안할 수 있습니다. 두 종류를 적절히 섞을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3. 온라인과 모바일 이용 편리함

요즘 IRP는 지점에 가서 서류를 내는 방식보다, 앱이나 인터넷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 같은 것들을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앱에서 계좌 잔액과 수익률을 한눈에 보기 쉬운지
  • 상품을 매수·매도할 때 과정이 복잡하지 않은지
  • 자산 비중을 바꿀 때(리밸런싱) 화면 구성이 이해하기 쉬운지

IRP는 짧게 쓰고 끝내는 계좌가 아니라서, 앞으로도 계속 열어보게 됩니다. 처음에 만드는 수고보다, 매번 쓸 때 느끼는 편리함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4. 투자 정보와 상담 지원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 계좌만 덜렁 열어두고 “이제 뭘 사야 하지?” 하는 상황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럴 때 금융회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상담이 도움이 됩니다. 리포트, 설명 자료, 영상, 추천 포트폴리오 예시 등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방향을 잡기 수월해집니다.

다만 온라인 전용 계좌는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지점에서 일대일 상담을 해주는 범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 생각한 뒤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지금 쓰는 은행·증권사와의 연결성

이미 주로 쓰는 은행이나 증권사가 있다면, 그 안에서 IRP를 열면 자산을 한 번에 보기 편해집니다. 급여 통장, 일반 투자계좌, 적금과 IRP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나중에 의외로 꽤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위의 수수료와 상품 구성을 먼저 확인한 뒤에 마지막에 편리함을 고려하는 쪽이 좋습니다.

은행에서 IRP를 만들었을 때의 특징

은행 IRP는 전체적으로 “안정성”을 조금 더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퇴직금을 크게 불리기보다는, 잃지 않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은행 IRP의 장점

은행은 원리금보장상품, 특히 예금과 적금 쪽에 강점이 있습니다. IRP 안에서 가입할 수 있는 정기예금 상품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 일정 수준의 금리를 꾸준히 제공하는 편입니다. 퇴직금을 너무 공격적으로 굴리고 싶지 않고, 손실 걱정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런 구성이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줍니다.

또 평소에 이용하던 은행이라면 앱 화면이나 창구 이용 방식이 익숙해서 덜 부담스럽습니다. 계좌 조회나 비밀번호 관리 같은 기본적인 부분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 IRP의 아쉬운 점

대신, 펀드나 ETF 같은 실적배당상품의 라인업이 증권사에 비해 좁은 편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택지가 적으면, 시장 상황이나 본인 성향에 맞게 세밀하게 포트폴리오를 꾸미기가 어렵습니다. 안정성을 강조하는 대신, 장기적인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은행 IRP가 잘 맞는 사람

  • 투자 경험이 많지 않고, 원금 손실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사람
  • 퇴직금으로 “한번 크게 벌어보자”라는 생각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
  • IRP를 주로 예금, 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운영할 계획인 사람

주요 은행들의 특징 간단 정리

여러 은행은 디지털 전환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모바일 앱 안에 IRP 관리 화면을 따로 잘 만들어두고 있습니다.

  • KB국민은행: IRP 고객이 많은 편이며, KB스타뱅킹, KB스타연금 앱을 통해 계좌 조회와 상품 변경을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TDF 상품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 신한은행: 연금 관련 메뉴를 따로 정리해두고, 관련 정보 제공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 우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기본적인 예금·펀드 상품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비대면 IRP 개설 시 수수료를 줄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을 고를 때에는, 각 은행 앱에서 IRP 상품 목록과 화면 구성을 미리 구경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증권사에서 IRP를 만들었을 때의 특징

증권사 IRP는 “수익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선택지입니다. 주식이나 ETF, 펀드에 익숙한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증권사 IRP의 장점

증권사의 가장 큰 강점은 상품 선택의 폭입니다. 국내외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 펀드, 다양한 ETF, TDF, 리츠까지 IRP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실적배당상품이 매우 많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목표와 성향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세밀하게 짤 수 있습니다.

또, 온라인 IRP 계좌에 대해 운용관리수수료와 자산관리수수료를 사실상 받지 않는 증권사가 많습니다. IRP 계좌 내 매매에 대한 수수료나 상품 보수는 따로 확인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계좌 유지 비용 부담이 적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여기에 더해, 증권사는 각종 투자 리포트와 분석 자료를 꾸준히 내놓는 편입니다. 이를 IRP 운용에 참고하면, 뉴스만 보는 것보다 시장을 보는 눈을 조금씩 기를 수 있습니다.

증권사 IRP의 아쉬운 점

반대로, 원리금보장상품 선택지는 은행에 비해 다소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제휴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을 IRP 안에 넣어두지만, 금리나 종류 면에서 “은행에서 직접 고르는 것보다 폭이 좁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선택지가 너무 많은 만큼, 무엇을 골라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커집니다. 단순히 “수익이 높다”는 말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변동성이 큰 상품에 과도하게 쏠릴 위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투자 개념을 조금씩이라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증권사 IRP가 잘 맞는 사람

  •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수익을 노려보고 싶은 사람
  • ETF, 펀드, 리츠 등 다양한 상품을 활용해서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싶은 사람
  • 투자를 이미 해봤거나, 앞으로 공부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

주요 증권사들의 특징 간단 정리

  • 미래에셋증권: 연금과 ETF, TDF 쪽에 강점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IRP 고객 수도 많은 편입니다.
  • 삼성증권: 국내외 펀드와 ETF 선택지가 넓고, 연금 자산 전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를 강조합니다.
  • NH투자증권, KB증권: 대형 증권사로서 시스템 안정성과 상품 다양성을 고르게 갖춘 편입니다.
  • 키움증권: 온라인 중심으로, 낮은 수수료와 간편한 매매 시스템에 강점이 있습니다.
  • 한국투자증권: 리서치 자료가 풍부하고, 연금 관련 솔루션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증권사를 고르든, 그 회사 IRP에서 실제로 어떤 펀드와 ETF를 제공하는지, 특히 TDF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목록으로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TDF를 활용하는 방법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개별 상품을 일일이 고르고 조정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상품이 TDF(Target Date Fund)입니다. TDF는 미리 “목표 시점”을 정해두고, 그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위험이 높은 자산 비중을 줄이고 안정적인 자산 비중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자동 조정이 이뤄지는 펀드입니다.

예를 들어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TDF를 선택하면, 처음에는 주식 비중이 높게 시작했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채권이나 현금 비중을 늘려주는 식입니다. 직접 자산 배분을 관리하기 어렵다면, IRP 안에서 TDF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합니다.

어디에 IRP를 만들지 방향 잡기

결국 IRP는 “어디가 더 좋다”를 단순 비교하기보다는, “내가 퇴직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싶은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마음속 질문을 몇 가지 해보면 방향이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 원금 손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안한가, 아니면 어느 정도 변동은 감수할 수 있는가
  • 지금까지 투자 경험이 있는지, 앞으로 공부를 해볼 의향이 있는지
  • 앱에서 직접 상품을 고르고 바꾸는 것이 괜찮은지, 아니면 눈앞에서 상담을 받는 편이 마음이 편한지

만약 “원금 손실은 절대 싫다”라는 마음이 강하다면, 은행 IRP에서 예금·적금 위주로 운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길면 길수록 물가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증권사 IRP에서 ETF나 펀드, TDF를 활용하는 쪽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합니다.

수수료 측면에서는, 비대면 IRP 계좌 개설 시 은행과 증권사 모두 상당 부분을 낮추거나 없애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상품 라인업과 이용 편리성이 더 중요한 비교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투자를 해봤거나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면,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같은 대형 증권사의 IRP를 몇 곳 추려서 화면 구성과 상품 구성을 직접 비교해보는 방식도 좋습니다. 반대로, 투자 자체가 아직은 낯설고 지점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평소 주로 이용하던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의 IRP부터 차분히 살펴보는 쪽이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IRP를 어디에서 만들든, 마지막으로 꼭 해보면 좋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기관의 모바일 앱을 실제로 설치해 IRP 관련 메뉴를 열어보고, 계좌 개설 전이라도 제공하는 화면과 안내를 직접 눌러보는 것입니다. 숫자와 설명만 읽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던 차이가, 직접 손으로 움직여보면 금방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