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따끔거리던 통증이 어느 정도 지나간 뒤에도, 같은 부위가 계속 화끈거리거나 전기가 오듯 아픈 느낌이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피부가 예민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아보지만, 옷만 스쳐도 아프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대상포진을 앓고 난 뒤에 남는 지속적인 통증을 바로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고 부릅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Postherpetic neuralgia, PHN)은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손상시키면서 생기는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입니다. 통증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사람마다 매우 다르지만, 한 번 생기면 오래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에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진료과에 가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정리해보겠습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왜 생기는가
대상포진은 어릴 때 수두를 일으켰던 바이러스가 몸속 신경절에 숨어 있다가, 성인이 된 후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활동하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붉은 발진과 물집, 심한 통증을 동반하며, 보통 몸 한쪽 줄기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피부 병변이 가라앉은 뒤에도 신경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면, 그 부위 신경이 과민해져서 계속 통증 신호를 보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특징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타는 듯이 화끈거리는 통증
- 칼로 베는 것처럼 찌르는 통증
-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통증
- 바람이나 옷깃만 스쳐도 심하게 아픈 통증
- 가려움, 저림, 감각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불편감
이러한 통증이 대상포진 피부 증상이 가라앉은 후에도 몇 주에서 몇 달, 때로는 수년간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초기 대상포진 통증이 심했을수록, 대상포진 치료를 늦게 시작했을수록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진료과에 가야 할까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여러 진료과에서 다루지만, 통증의 패턴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진료과를 중심으로 진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취통증의학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데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과입니다. 이름은 ‘마취’가 들어가지만, 수술실 마취뿐 아니라 만성 통증을 전담하는 ‘통증의학’을 함께 담당합니다.
마취통증의학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치료를 종합적으로 시행합니다.
- 신경병증성 통증에 맞는 약물 치료
- 신경차단술(신경 근처에 약을 주입해 통증 신호를 줄이는 시술)
- 고주파 열응고술(문제가 되는 신경 부위를 열로 부분적으로 파괴해 통증을 줄이는 시술)
- 경막외 차단술, 척수강내 약물 주입 등 척추를 통한 통증 조절 시술
- 물리치료, 주사치료 등 보존적 치료
통증이 오래 지속될수록 신경이 통증을 더 잘 기억하게 되고, 통증 자체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비교적 초기에 통증 조절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경과
신경과는 뇌, 척수, 말초 신경까지 전체 신경계를 다루는 과입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신경 손상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신경과에서도 충분히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경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 신경 손상 정도와 범위 확인
- 가바펜틴, 프레가발린과 같은 신경병증성 통증 조절 약물 처방
- 감각 검사, 신경전도 검사 등 필요 시 신경 기능 평가
신경과에서 약물 치료를 진행하면서,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마취통증의학과와 협진하거나 시술적 치료를 함께 고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활의학과
재활의학과는 통증 자체뿐 아니라 그로 인해 떨어진 기능 회복에 중점을 둡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오래 지속되면, 아픈 부위를 쓰지 않게 되면서 근육이 약해지고 관절이 굳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통증 때문에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자세가 틀어지고, 또 다른 통증이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재활의학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치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기 자극, 온열 요법 등 물리치료
- 맞춤 운동치료와 스트레칭 교육
- 자세 교정, 일상생활에서의 동작 지도
- 통증 완화를 돕는 주사치료, 제한적 신경차단술 등
통증 때문에 몸을 쓰기 두려워하는 경우, 재활의학과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픈 몸을 안전하게 다시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정의학과와 내과
처음 통증이 생겼을 때, 어느 과에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가까운 가정의학과나 내과에서도 문을 두드려볼 수 있습니다. 피부에 물집이 남아 있거나 대상포진이 의심되는 초반이라면, 항바이러스제와 통증 조절 약을 통해 초치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통증이 매우 심하거나,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의심될 정도로 통증이 오래 지속된다면, 가정의학과나 내과에서도 보통 마취통증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등으로 진료의뢰서를 써서 전문과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처음 만나는 주치의 역할을 하고, 이후 필요한 전문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병원과 진료과를 선택하면 좋을까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의심되면,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체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몇 가지 기준만 기억해두면 선택이 한결 쉬워집니다.
가까운 통증 관련 진료과부터 방문하기
많은 지역 병원에는 마취통증의학과나 신경과가 함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주지 근처에서 다음과 같은 진료과를 우선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마취통증의학과
- 신경과
- 재활의학과
이 중 한 곳을 먼저 방문해 현재 통증 상태를 평가받고, 필요한 경우 다른 과로 추가 의뢰를 받는 식으로 진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과가 더 맞을지 헷갈린다면, 통증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얼마나 심한지, 일상생활에 어떤 불편이 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의료진이 적절한 방향을 안내해줍니다.
종합병원·대학병원의 전문 클리닉 활용하기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여러 병원을 다녀도 호전이 잘 되지 않는다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런 병원에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전문 클리닉이 별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통증 클리닉
- 대상포진 클리닉
- 신경통 클리닉
이러한 클리닉은 보통 마취통증의학과를 중심으로 신경과, 재활의학과, 필요하면 정신건강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함께 협진을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만성 통증에 대한 다양한 치료를 한 공간에서 연계해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의료전달체계 이해하기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동네 의원과 중소병원(1·2차 의료기관)에서 먼저 진료를 받고, 필요할 때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등)으로 진료의뢰서를 통해 올라가는 의료전달체계를 기본으로 합니다.
상급종합병원을 처음부터 바로 방문할 수도 있지만, 진료의뢰서가 없다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더 커질 수 있고, 진료 대기 시간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 1단계: 가까운 통증 관련 과(마취통증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에서 초진
- 2단계: 치료를 해보았는데 잘 낫지 않거나 복잡한 처치가 필요하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의뢰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태에 맞는 의료기관을 더 효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료를 준비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점들
병원에 가서 “아파요”라고만 말하면, 의료진이 통증의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통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수록, 진단과 치료 계획이 정확해질 수 있습니다.
통증을 설명하는 요령
진료 전, 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미리 적어가면 도움이 됩니다.
- 언제부터 아팠는지: 대상포진이 언제 생겼고, 피부 병변이 사라진 뒤에도 언제까지 아팠는지
- 어디가 아픈지: 몸의 어느 쪽, 어느 범위인지
- 통증의 느낌: 화끈거리는지, 찌르는지, 전기가 오는지, 쑤시는지 등
-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 옷이 스칠 때, 바람을 쐴 때, 밤에 더 심한지 등
- 지금까지 먹어본 약과 치료: 어떤 약을 얼마나 먹어봤는지, 효과는 어땠는지
이런 정보를 토대로 의료진은 신경통의 정도를 가늠하고, 어떤 종류의 약물과 시술이 더 적합할지 판단하게 됩니다.
여러 치료법을 함께 고려하기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단일 치료만으로 완전히 해결되는 경우보다, 여러 방법을 함께 적용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조합이 가능합니다.
- 신경병증성 통증 조절 약물 + 일반 진통제
- 약물 치료 + 신경차단술이나 고주파 시술
- 통증 조절 + 물리치료·운동치료
- 통증 치료 + 수면 관리, 불안·우울 상담
통증으로 인해 잠을 못 자거나, 불안과 두려움이 심해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심리적 요인은 실제 통증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통증을 줄이는 것, 몸 기능을 회복하는 것,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것을 함께 목표로 삼으면 장기적으로 훨씬 도움이 됩니다.
조기에 진료 받는 이유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통증이 오래 쌓이면서 신경이 “통증에 익숙해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통증을 오래 참을수록 신경계가 통증 신호에 더 민감해지고, 조금만 자극이 와도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라면 되도록 서둘러 전문 진료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 대상포진이 나고 난 뒤 1~2개월이 지났는데도 통증이 계속 심한 경우
- 옷만 스쳐도 아파서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
-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거나, 학교·직장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경우
- 집에서 먹는 진통제로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경우
초기에 적절한 약물 치료와 시술, 물리치료 등을 병행하면, 통증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관리
전문적인 의료진의 치료가 기본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조심하면 통증 악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 통증 부위를 찌르거나 세게 문지르지 않기
- 너무 꽉 끼는 옷보다는 부드럽고 헐렁한 옷 입기
-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자극 피하기
-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가벼운 운동으로 전반적인 체력 유지하기
- 통증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는, 집중할 수 있는 취미나 활동 찾기
다만 어떤 운동이나 생활 습관이 나에게 맞는지는 각자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구체적인 방법은 진료 시 의료진과 상의하면서 조절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단순히 참으면 되는 통증이 아니라, 신경 손상에서 비롯된 질환입니다. 통증의 정도에 따라 마취통증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여러 과가 함께 협력해 치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통증을 자세히 설명하고, 너무 늦지 않게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