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집에 물 대신 항상 보리차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냉장고를 열면 투명한 물병 대신 진한 갈색의 보리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갈증이 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보리차를 컵에 따라 마시곤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보리차만 마셔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을 아예 안 마시고 보리차만 마셔도 건강에 문제가 없을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보리와 보리차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고 정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블랙 보리차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면 이해가 훨씬 편합니다. 블랙 보리차라고 부르는 음료는 보리를 강하게 볶아서 더 진하고 구수한 향과 색을 낸 보리차입니다. 일반 보리차보다 색이 더 짙고 향이 강한 편이라서 이름에 ‘블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 재료는 같은 보리이기 때문에 카페인이 없고, 물에 우리면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반 보리차와 성격이 비슷합니다.
블랙 보리차를 물 대신 마셔도 되는 이유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부분은 “물을 안 마시고 블랙 보리차만 마셔도 되나요?” 하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특별한 질환이 없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수분을 보충하는 용도로 블랙 보리차를 마시는 것은 대체로 괜찮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블랙 보리차는 카페인이 없습니다. 커피, 에너지음료, 탄산음료, 일부 녹차나 홍차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는데, 카페인은 심장이 빨리 뛰게 하거나 잠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리를 볶아 우린 보리차는 곡물이 재료이다 보니 카페인이 자연스럽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마셔도 잠을 크게 방해하지 않고,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둘째, 블랙 보리차의 대부분은 물입니다. 보리를 우린 물이기 때문에 한 잔을 마시면 그만큼 몸에 수분이 들어옵니다. 갈증이 날 때 블랙 보리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목이 덜 마르고, 몸의 수분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순수한 물만큼 완전히 ‘중성’은 아니어도, 일상적인 수분 보충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구수한 맛과 향 덕분에 물을 잘 안 마시는 사람에게 유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맛이 없는 물을 싫어해서 하루 종일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진한 향이 나는 블랙 보리차를 준비해 두면, 음료를 마시는 느낌이 나면서도 설탕이나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아 건강에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특히 차갑게 식혀 두면 탄산음료를 마시는 양을 자연스럽게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보리 자체가 지닌 유익한 성분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보리는 곡물이라서 식이섬유, 미네랄, 비타민 등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차로 마실 때는 곡물을 그대로 먹는 것보다는 양이 적지만, 보리를 볶고 우리면서 일부 성분이 물로 녹아 나옵니다. 이 가운데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성분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 몸에서 나쁜 활성산소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예로부터 보리차는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에 속을 편하게 해 준다고 여겨져 왔는데, 실제로 소화를 돕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습니다.
다섯째,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은 블랙 보리차는 칼로리가 거의 없습니다. 음료수나 과일주스, 카페라테 같은 음료는 한 잔만 마셔도 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지만, 보리차는 사실상 물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군것질을 줄이려는 사람에게는 달지 않으면서도 입이 심심할 때 마시기 좋은 음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물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지만, 블랙 보리차가 순수한 물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를 알면 언제는 보리차를 마셔도 좋고, 언제는 물이 더 좋은지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선 보리차는 완전히 ‘아무것도 녹아 있지 않은 물’이 아닙니다. 보리에서 우러나온 미네랄과 여러 유기 성분이 소량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정도 성분은 오히려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해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다만 아주 예민하게 몸 상태가 영향을 받는 사람, 예를 들어 신장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특정 미네랄 섭취를 엄격히 조절해야 하는 사람은 의사와 상의한 뒤에 물과 보리차의 비율을 조절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한 가지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이 이뇨 작용입니다. 이뇨 작용이란 소변이 더 잘 나오도록 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카페인이 강한 커피나 에너지음료는 이뇨 작용이 비교적 뚜렷해서, 마신 양에 비해 몸에 남는 수분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보리차는 여기에 비하면 이뇨 작용이 매우 약하거나, 일상적인 양에서는 거의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분이 수분 배출을 조금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아주 많은 양을 마실 경우에는 순수한 물만 마셨을 때와 비교했을 때 몸에 남는 수분의 양이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건강한 사람이 평소에 마시는 정도의 양이라면 이 차이가 크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언제는 물이 더 유리할까
몸은 상황에 따라 필요로 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블랙 보리차가 일상적인 수분 보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때는 순수한 물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을 심하게 했거나 무더운 날 오래 걸어서 땀을 많이 흘렸을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물뿐 아니라 땀 속에 섞여 나간 나트륨, 칼륨 같은 전해질도 함께 손실됩니다. 시중에는 전해질이 보충된 음료들도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깨끗한 물을 마셔서 몸 안에 빠르게 수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물은 특별한 성분이 거의 없어서 위를 빨리 통과해 장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흡수가 비교적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런 점에서 격한 운동 직후 처음 몇 잔은 순수한 물을 중심으로 마시고, 이후에 입이 심심할 때 보리차를 곁들이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약을 먹어야 할 때도 보통은 물과 함께 복용하라고 안내합니다. 약에 따라서 특정 음료나 차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리차는 대부분의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의사나 약사가 특별히 허용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은 가급적 물로 삼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블랙 보리차를 더 건강하게 마시는 방법
블랙 보리차를 수분 보충용으로 잘 활용하려면, 마시는 방법도 조금 신경 쓰면 좋습니다. 대단히 복잡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몇 가지만 기억해 두면 충분합니다.
먼저 너무 진하게 우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보리를 오래 끓이거나, 보리 양에 비해 물이 지나치게 적으면 맛이 쓴맛에 가깝게 변하고,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포장에 적힌 권장 비율을 따르거나, 처음에는 연하게 우려서 마셔 보면서 농도를 조절하는 편이 좋습니다.
둘째, 설탕이나 시럽을 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구수한 맛이 부족해서 달게 마시기 시작하면, 어느새 다른 달콤한 음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칼로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리 자체의 고소한 향에 익숙해지면, 설탕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 너무 뜨겁게 마시는 습관은 피하는 편이 몸에 부담이 적습니다. 뜨거운 음식을 자주, 매우 뜨거운 상태로 먹으면 식도에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따뜻하게 마시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김이 펄펄 날 정도로 뜨거운 상태에서 급하게 마시는 습관은 천천히 줄여 가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하루 종일 블랙 보리차만 고집하기보다는 물도 함께 두고 번갈아 마시는 방식이 알맞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점심에는 물을 한두 잔씩 마시고, 오후나 저녁에는 블랙 보리차를 중심으로 마시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몸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물도 충분히 공급되면서, 구수한 보리차의 장점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와 특수한 경우에는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리는 편안한 곡물이지만, 모든 음식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보리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보리차를 마셨을 때 가려움, 두드러기, 복통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억지로 보리차를 마시기보다 의사와 상담해서 다른 대체 음료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신장 질환이 있거나, 의사로부터 수분 섭취와 전해질 섭취를 엄격히 조절하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진료를 받는 병원에서 구체적인 안내를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소아나 고령자의 경우에도 갑자기 수분 섭취 방식을 크게 바꾸기보다는 물과 보리차, 기타 음료의 비율을 천천히 조정해 가며 몸 상태를 살피는 편이 좋습니다.
결국 블랙 보리차는 물 대신 마셔도 괜찮은, 비교적 안전하고 구수한 음료입니다. 다만 몸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분 공급원은 여전히 ‘맹물’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고, 물과 보리차를 적절히 섞어서 마시는 습관을 들이면 더 균형 잡힌 수분 섭취가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