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갑자기 아이가 숨이 가쁘다며 울먹이던 날이 있습니다.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빨리 뛴다고 하며 숨을 깊게 쉬지도 못하고, “나 죽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나 심장 문제인가 싶어 응급실을 떠올리게 되지만,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면 마음 한켠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낯선 경험이, 사실은 ‘어린이 공황장애’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 공황장애, 어른과 무엇이 다를까
어린이의 공황장애는 기본적인 증상 자체는 어른과 비슷하지만, 표현 방식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몸 상태를 정확한 말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서워요”보다는 “배가 아파요”, “숨이 안 쉬어져요”처럼 주로 몸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공황 발작이 꼭 어른처럼 명확한 상황(엘리베이터, 지하철 등)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TV를 보다가, 학교 수업 시간 중에, 하굣길 버스 안에서 등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단순한 떼쓰기나 일시적인 예민함으로 오해하기도 쉽습니다.
대표적인 신체 증상
어린이 공황장애의 신체 증상은 보통 갑작스럽고 강하게 나타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장병이나 호흡기 질환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극심할 수 있습니다.
-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
- 숨쉬기 어렵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
- 어지럽고 균형을 잃을 것 같은 현기증
- 손발이 떨리거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느낌
- 메스꺼움, 복통, 속이 뒤틀리는 듯한 소화 불편감
- 갑자기 땀이 많이 나거나, 식은땀이 나는 경험
- 갑작스러운 오한 또는 열이 확 오르는 느낌
- 손발이 저리거나 찌릿찌릿한 감각 이상, 무감각함
- 입이 바짝 마르고 목이 타는 느낌
-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거나 근육이 뻣뻣해지는 긴장감
이러한 증상은 실제로 아이에게 매우 무섭고 낯선 경험이기 때문에, 한 번 겪고 나면 “또 그러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남기 쉽습니다.
마음과 생각에서 나타나는 정신·인지적 증상
몸의 증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아이는 이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해도, 속으로는 매우 큰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공포
-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주변이 낯설게 느껴지는 비현실감
-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 실수나 실패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고, 작은 일에도 불안해함
- 수업, 놀이, 독서 등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집중력 저하
-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어나고, 안절부절 못하며 예민해지는 모습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예민하냐”라고만 보기 쉽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공포와 불안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변화들
어린이 공황장애는 행동의 변화로도 많이 드러납니다. 특히 이전에는 잘 지내던 장소나 상황을 갑자기 피하려 할 때는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공황 발작이 일어났던 장소(학교, 학원, 버스, 마트 등)나 상황을 계속 피하려 함
- 부모나 보호자에게 과도하게 매달리고 떨어지려고 하지 않음
- 잠들기를 두려워하거나, 악몽을 자주 꾸고 밤에 자주 깨는 모습
- 학교 가기를 싫어하고,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며 등교를 거부함
- 병원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두통이나 복통을 반복적으로 호소함
-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잘 울고 칭얼거리거나, 갑작스러운 떼쓰기와 과도한 반항
이러한 행동은 일부러 버릇없이 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 공황장애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어른의 공황장애와 비교했을 때, 어린이에게서 특히 많이 관찰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이를 알고 있으면 아이의 신호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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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불안감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콕 집어 말하기보다는 “뭔가 잘못될 것 같아요”, “그냥 무서워요”처럼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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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증상 중심의 표현
“배가 아파요”, “숨이 안 쉬어져요”, “심장이 이상해요”처럼 몸의 증상을 주로 말하며, 정작 마음이 불안하다는 표현은 거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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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반경의 점진적인 축소
공황 발작을 겪은 곳이나 그와 비슷한 상황을 하나둘 피하다 보면, 결국 학교, 학원, 친구 집, 놀이터 등 활동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집에만 있으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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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관계에서의 어려움
자주 불안해하고 예민해지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렵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해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극적이 되거나, 반대로 공격적인 태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언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아이에게 위와 같은 증상이 반복되거나, 일상생활과 학교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된다면, 혼자서 추측하거나 인터넷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공황과 비슷한 증상이 반복되며, 아이가 그 일을 계속 두려워할 때
- 학교나 친구 관계, 가족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불안과 회피가 심해질 때
- 내과·소아과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아이가 계속 몸이 아프다고 할 때
전문의는 아이의 발달 단계와 성격, 환경을 함께 고려해 공황장애인지, 다른 불안장애나 스트레스 반응인지 자세히 평가합니다. 필요하다면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부모 상담, 약물치료 등을 적절히 조합해 아이에게 맞는 도움을 제시합니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할수록 아이는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민해서 그렇겠지”라며 그냥 넘기지 않는 것,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믿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