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저녁만 되면 TV 앞에 앉게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쉬려고 리모컨을 들었다가, 어느 새 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드라마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보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다시보기를 틀어놓기도 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청률이 높은 작품과, 숫자는 그렇게 높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엄청난 이야깃거리를 만든 드라마들이 조금씩 구분되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에는 유난히 다양한 장르가 동시에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주말 가족극부터 짜릿한 범죄 수사극,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OTT에서만 볼 수 있는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보는 사람 취향에 맞춰 골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아래에서는 방송사와 플랫폼, 장르를 나누지 않고, 올해 상반기에 특히 많이 회자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024년, 시청률로 본 화제의 드라마들
먼저 TV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들 중,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가구 최고 시청률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말 황금시간대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편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하고 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쉽습니다.
눈물의 여왕 (tvN)
눈물의 여왕은 2024년 상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vN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새로 쓰며, 지상파와 케이블을 통틀어도 손꼽히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24%를 훌쩍 넘겼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꾸준히 올라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재벌가와 평범한 남편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가족 이야기, 성장, 용서와 화해까지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김수현, 김지원 배우의 연기 호흡이 크게 화제를 모았고, 해외에서 동시 방영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팬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속 명대사, 장면, 패션, OST가 동시에 인기를 얻으면서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와 영상 플랫폼에서는 관련 클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녀와 순정남 (KBS2 주말 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은 KBS의 전통적인 주말 가족극 계열 작품입니다. 2024년 3월 말부터 방영을 시작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회차가 쌓일수록 20% 안팎의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최고 시청률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로맨스와 가족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는 전형적인 장편 드라마 구조를 따릅니다. 다양한 세대의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갈등과 화해 과정이 이어지면서 주말 저녁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무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정서적인 흐름과 인물들의 관계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2024년 1월 1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 2월 20일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최고 시청률은 약 12% 정도로, 케이블 채널 기준으로 상당히 높은 성적입니다.
이야기는 배신과 죽음 이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삶을 살아 보게 되는 회귀와 복수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면서도, 완전히 어두운 분위기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긴장감과 통쾌함,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감정선까지 뒤섞이면서 보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아 두었습니다. 특히 박민영 배우의 연기 변신이 많이 언급되었고, 원작 웹툰과의 차이점, 각색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오갔습니다.
원더풀 월드 (MBC)
원더풀 월드는 3월부터 4월까지 방영된 작품으로, 최고 시청률 약 11%대를 기록했습니다. 장르는 휴먼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되지만, 단순한 추리극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죄책감, 상실감, 분노를 다루는 감정극에 더 가깝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잘못된 사건 처리로 인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인물들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김남주, 차은우 배우의 조합이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고, 방송이 시작된 후에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운 분위기와 몰입감 있는 전개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극 중 인물들이 선택하는 방식에 대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토론이 많이 이루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사반장 1958 (MBC)
수사반장 1958은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고전 ‘수사반장’의 프리퀄 격 작품입니다.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원작보다 더 과거인 1958년을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최고 시청률은 약 10% 후반에 근접한 수준까지 올라가며 안정적인 성적을 냈습니다.
이 시리즈는 복고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연출을 적절히 섞어,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시대극 수사물의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이제훈 배우가 맡은 젊은 수사반장의 모습,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사건들이 보는 맛을 더해주었습니다.
재벌X형사 (SBS)
재벌X형사는 제목처럼 재벌과 형사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을 내세운 드라마입니다. 1월 말에 시작해 3월에 완료되었고, 최고 시청률은 11% 정도까지 올랐습니다.
막강한 재력을 가진 주인공이 경찰과 함께 수사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코믹한 장면과 액션, 수사가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안보현, 박지현 배우의 호흡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서도 속이 시원해지는 전개 덕분에 금요일, 토요일 밤 시간대를 책임졌습니다. 인기가 좋아서 이후 시즌2 제작 소식까지 이어졌습니다.
닥터 슬럼프 (JTBC)
닥터 슬럼프는 의사들이 겪는 번아웃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로맨틱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방영되었고, 최고 시청률은 8%대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수재로만 살다가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벽에 부딪힌 인물들, 겉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스펙을 가졌지만 마음속은 완전히 지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렸습니다. 박신혜, 박형식 배우가 오랜만에 함께 출연하면서 관심을 모았고, 힘들 때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 덕분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숫자보다 더 뜨거운 온라인 화제작들
요즘에는 시청률 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그리고 OTT 플랫폼에서의 반응이 드라마 인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TV로 본 사람보다 휴대폰과 태블릿으로 다시보기만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숫자로 드러나는 시청률과 실제 체감 인기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선재 업고 튀어 (tvN)
선재 업고 튀어는 2024년 상반기 온라인 화제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힘든 작품입니다. 최고 시청률은 5% 중반대로,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보다는 수치가 낮지만, 인터넷과 해외 플랫폼에서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타임슬립과 음악,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드라마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연인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변우석, 김혜윤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팬아트, 2차 창작, OST 커버 영상 등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굿즈와 콘서트 같은 확장 콘텐츠도 큰 호응을 받았고, 해외 팬덤이 급속도로 성장해 ‘신드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습니다.
피라미드 게임 (TVING)
피라미드 게임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OTT 오리지널 드라마입니다. 2월 말부터 3월까지 공개되었고,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서열 게임을 잔혹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 주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여고생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겨, 가장 낮은 등급이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구조를 통해, 학교 폭력과 집단 심리를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냅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고 내용도 무겁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많이 나왔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넷플릭스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영웅’이 아닌, 평범하고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5월부터 6월 초까지 방영되었고, 최고 시청률은 4%대 정도입니다. 수치만 보면 대형 흥행작은 아니지만,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품입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힘 때문에 더 힘들어진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이어집니다. 장기용, 천우희 배우의 연기와 독특한 연출이 잘 어우러져, 방영 내내 “이 드라마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크래시 (ENA)
크래시는 ENA 채널에서 방영 중인 범죄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특별한 점은 ‘교통범죄수사팀’이라는 소재입니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 마약 사건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와 사고를 파헤치는 팀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최고 시청률은 6%를 넘어섰고, ENA 채널 자체 기록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 류경수, 이민기, 곽선영 배우를 비롯한 출연진의 팀워크가 좋다는 평이 많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장면과 실제로 있을 법한 사건들이 잘 섞여 있어 몰입도가 높습니다. OTT를 통한 다시보기 비중도 높은 편이라, 방송 직후보다는 시리즈 전체가 쌓인 뒤에 입소문이 더 강하게 퍼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커넥션 (SBS)
커넥션은 마약 사건을 중심으로 한 범죄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5월 말에 시작해 방영이 이어지는 동안 9%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기자, 경찰, 범죄 조직이 얽히며 드러나는 진실과 은폐의 구조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회차마다 반전이 이어지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지성, 전미도 배우의 연기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이 드라마에서는 한층 더 극적인 감정 표현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의 윤리가 부딪히는 장면들이 많아, 단순한 추리극 이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더 에이트 쇼 (Netflix)
더 에이트 쇼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8인 서바이벌 스릴러입니다. 참여자 8명이 한 건물 안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사람의 욕심과 공포, 심리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원작은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으로, 이 두 작품의 내용을 재구성해 하나의 시리즈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류준열, 천우희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몰입감을 높이고, 무대 대부분이 실내에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개 직후 여러 나라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하이라키 (Netflix)
하이라키는 상위 0.01%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하이틴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재벌가 자녀들과 특혜 입학생,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펼쳐집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빌려 권력, 계급, 차별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면서도, 젊은 배우들의 패기 있는 연기로 화면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로몬, 노정의 등 출연진이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고, 공개 직후 국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해석과 후기들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학교 안에 또 다른 사회가 있다”는 설정이 현실과 겹쳐 보인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2024년 드라마가 보여주는 흐름
올해 방영된 여러 작품을 함께 놓고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먼저, 단순한 로맨스나 가족극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를 다루거나,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끝까지 파고드는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학교 폭력, 계급, 마약 범죄, 직장인의 번아웃, 가족 해체와 같은 소재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플랫폼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에서 처음 방영된 드라마도 OTT를 통해 다시보기로 소비되고, 처음부터 OTT 전용으로 제작된 작품도 TV 못지않은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드라마는 시청률은 높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또 어떤 드라마는 전통적인 TV 시청층을 중심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식으로, 여러 종류의 성공 방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2024년 상반기에 소개된 이 작품들만 보더라도, 앞으로 나올 드라마에서 어떤 시도와 변화가 이어질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작품을 찾기에도 더없이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