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환사채나 전환우선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숫자도 많고 영어 약자(CB, CPS)도 섞여 있어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 기업이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몇 년 뒤에 그게 보통주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보다 단순한 원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업 주가가 전환 시점에 크게 흔들리는 것도 보면서, 왜 어떤 사람은 이걸 호재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악재라고 하는지 궁금해져서 하나씩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전환청구권은 말 그대로 “다른 종류의 증권을 보통주로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전환사채(CB)와 전환우선주(CPS)입니다. 전환사채는 원래는 빚(채권)인데, 일정 조건이 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증권이고, 전환우선주는 우선주를 나중에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증권입니다. 이 권리가 실제로 행사되는 순간,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전환청구권이란 무엇인지 먼저 정리하기
전환청구권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전환사채(CB)는 회사가 투자자에게 “나중에 네가 원하면 이 빚을 주식으로 바꿔줄게”라고 약속하고 발행한 채권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돈을 빌리지만, 나중에 상황에 따라 그 빚을 주식으로 갚을 수도 있게 되는 구조입니다.
둘째, 전환우선주(CPS)는 우선 배당을 받는 우선주에 “나중에 네가 원하면 보통주로 바꿔줄게”라는 약속이 붙어 있는 주식입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제한적이거나 없는 대신 배당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통주로 전환되면 의결권이 생기고 회사의 주인이 되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셋째, 전환가액은 “이 권리를 쓸 때 보통주 한 주를 얼마로 쳐줄 것인지”를 미리 정해놓은 가격입니다. 실제 주가가 이 전환가액보다 올라갔을 때, 투자자는 권리를 행사해 보통주로 바꾸고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권리가 행사되는 순간, 채권이 사라지고 주식이 생기거나, 우선주가 보통주로 바뀝니다. 이때 회사와 기존 주주는 각각 다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왜 전환청구권 행사가 악재처럼 보이는지
전환청구권 행사 소식이 나오면 단기적으로는 악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주식 희석 효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면 시장에 존재하는 보통주의 수가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 주식이 100만 주였는데, 전환으로 새로 발행된 주식이 20만 주라면, 이제 총 120만 주가 되는 식입니다.
이렇게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면,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이 그대로라는 가정 아래, 한 주당 돌아가는 이익(EPS, 주당순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파이는 그대로인데 나눠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진 주식 한 주의 가치가 희석되는 셈입니다.
또한 의결권 지분율도 줄어듭니다. 같은 주식 수를 들고 있어도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면 자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던 투자자나, 지분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환으로 인해 자신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주식 수가 늘어나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물량도 많아지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단기적으로 주가에 하락 압력이 걸리기 쉽습니다. 특히 한 번에 많은 물량이 전환되어 풀리면 이 압력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2. 잠재적인 매도 물량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전환청구권을 행사하는 투자자는 대부분 일정 수준의 이익을 예상하고 행동합니다. 전환을 통해 보통주를 받으면, 언젠가 그 주식을 시장에서 팔아서 차익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팔릴 수 있는 물량”이 눈에 보이게 늘어나면, 시장에서는 이를 잠재적인 매도 물량, 즉 오버행(Overhang)이라고 부릅니다. 당장 매도가 나오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은 “언젠가 저 물량이 한꺼번에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걱정은 주가의 상승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매수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에 매도 물량이 많을 것 같은데 굳이 비싸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로 단기 주가가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호재라고 말할까
흥미로운 점은, 전환청구권 행사가 숫자만 보면 악재처럼 보이는데도,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역시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회사의 재무구조가 실제로 좋아지기도 합니다
전환사채(CB)의 경우를 먼저 보겠습니다. 전환사채는 회사 입장에서 빚입니다. 전환이 되지 않으면 만기까지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도 돌려줘야 하는 채무입니다. 그런데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면 이 빚이 보통주로 바뀝니다. 회사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되고, 대신 새로운 주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재무제표에서는 부채가 줄고 자본이 늘어납니다. 결과적으로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재무구조가 개선됩니다. 또 이자를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년 빠져나가던 이자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익이 개선될 여지가 생기는 셈입니다.
전환우선주(CPS)도 마찬가지로, 우선주로서의 배당 부담이 줄고, 보통주 자본으로 전환됩니다. 우선주에는 보통주보다 높은 배당률이 붙는 경우가 있어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전환이 이루어지면 이런 부담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재무적으로 이미 약한 회사라면, 전환을 통해 한꺼번에 부채를 줄이고 자본을 늘리는 일이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희석이 있더라도, 회사가 버틸 힘을 얻었다”라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2. 투자자가 회사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전환청구권은 보통 현재 주가가 전환가액보다 높을 때 행사됩니다. 그래야 전환하는 사람이 실제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전환이 가능한 시점까지 회사의 주가가 어느 정도 상승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전환권을 가진 투자자가 “굳이 전환하지 않고 채권으로 계속 들고 있거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주식으로 바꾸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 투자자가 앞으로도 회사의 주가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지금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전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전환할 만큼 회사 상황이 나쁘지 않다”, “전환가액보다 주가가 충분히 높다”라는 점 자체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3. 계속 남아 있던 오버행 부담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전환청구권이 아직 행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장은 이미 그 물량을 알고 있습니다. 공시를 통해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만큼 전환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알려져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언젠가 이 물량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합니다.
이처럼 항상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잠재적인 물량이 바로 오버행입니다. 이 오버행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으면, 주가가 상승할 때마다 “여기서 전환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전환이 대거 이루어지고, 이후 남은 전환 가능 물량이 거의 없거나 아주 적어진다면, 시장은 “이제 앞으로 새로 나올 물량은 거의 없다”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전환 가능 기간이 끝나가거나, 이미 대부분의 물량이 전환을 마친 상황이라면, 다시는 같은 종류의 오버행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전환청구권 행사 소식을 볼 때 함께 확인하면 좋은 것들
현실에서는 전환청구권 행사가 “단순히 호재” 또는 “단순히 악재”라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몇 가지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첫째, 전환 물량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입니다. 기존 발행 주식 수에 비해 전환 물량이 너무 크면, 희석과 매도 압력의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미 주식 수에 비해 비율이 크지 않거나,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충격이 줄어듭니다.
둘째, 현재 주가와 전환가액의 차이입니다. 주가가 전환가액보다 훨씬 높을수록 전환하는 사람의 이익 폭이 커집니다. 이 경우, 전환 후 곧바로 매도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셋째, 기업의 재무 상태입니다. 이미 재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라면, 전환으로 인한 추가적인 재무 개선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희석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채비율이 높고 이자 부담이 무거운 회사였다면, 전환을 통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는 효과가 더 크게 체감될 수 있습니다.
넷째, 전환 이후 남아 있는 잠재 전환 물량과 그 일정입니다. 전환이 한 번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남은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물량이 언제까지 전환 가능한지에 따라 앞으로의 오버행 부담 정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이미 주가가 많이 올라서 전환 차익이 크게 난 상황에서, 전체 발행 주식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물량이 한꺼번에 전환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재무구조가 매우 취약했던 회사가 이번 전환으로 인해 부채를 크게 줄이고, 남은 전환 가능 물량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전환청구권 행사는 이렇게 한 가지 면만 보고 단정 짓기보다는, 악재로 보이는 부분과 호재로 보이는 부분을 함께 놓고 비교해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