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퇴직연금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먼 미래의 일처럼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실제로 퇴직을 한 어른들이 “연금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손에 남는 돈이 이렇게까지 다를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하나씩 살펴보다 보니 제법 흥미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같은 금액을 모아두어도, 언제부터 얼마나 길게 나누어 받는지, 어떤 방식으로 받는지에 따라 세금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퇴직연금은 은퇴 후 생활비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얼마가 쌓였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꺼내 쓸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두면 훨씬 유리합니다. 아래 내용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왜 수령 방식과 기간을 신중하게 정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퇴직연금, 왜 중요한가

퇴직연금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 매달 조금씩 적립해 두었다가, 퇴직 후에 꺼내 쓰는 돈입니다. 대표적으로 DB형, 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IRP 계좌에 쌓인 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돈은 한 번에 확 꺼내 쓸 수도 있고, 매달 혹은 매년 조금씩 나누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차피 내 돈인데, 언제 받든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금을 어떻게 매기느냐에 따라 손에 쥐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퇴직연금이라도, 현명하게 꺼내 쓰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일시금과 연금 수령 방식의 차이

퇴직연금을 받을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일시금”으로 받을지, “연금”으로 받을지입니다.

일시금으로 받는 경우

일시금은 말 그대로 퇴직할 때 한꺼번에 모두 받아버리는 방식입니다. 이때는 퇴직소득세라는 세금이 붙습니다. 퇴직소득세는 근무 기간, 급여 수준 등을 고려해 계산되며, 이미 회사 생활을 마쳤을 때 한 번에 정산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한 번에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세제 혜택 면에서는 가장 평범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돈을 다시 예금이나 다른 금융상품에 넣어 두더라도, 그 이후의 이자나 수익에는 또 일반적인 세금이 붙게 됩니다.

연금으로 나누어 받는 경우

연금 방식은 퇴직연금을 연금 계좌에 두고, 매달 또는 매년 나누어 받아 쓰는 방법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같은 퇴직소득세를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깎아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제도에서는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을 경우, 퇴직소득세를 바로 다 내지 않고, 연금소득세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나누어 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 내야 할 퇴직소득세의 일정 비율이 감면되고, 실제로 적용되는 세율도 낮은 편입니다. 나이에 따라 대략 3.3%에서 5.5% 정도의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에는 지방소득세가 포함된 수치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나누어 받는 것이 세금 면에서 대부분 더 유리합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할 수 있는 조건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으려면 아무 때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나이가 만 55세 이상이어야 합니다. 실제 나이와는 조금 다를 수 있으니, 주민등록상 만 나이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째, 퇴직연금 계좌에 일정 기간 이상 가입되어 있어야 합니다. IRP나 DC형 계좌의 경우 보통 5년 이상 유지한 뒤에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DB형은 회사에서 운용하다가 퇴직 시점에 연금 계좌로 옮겨오는 형태가 많기 때문에, 연금 개시 시점에 맞추어 조건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조건들을 충족한 뒤에 금융기관에 연금 개시를 신청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연금 수령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연금 수령 기간, 왜 길게 보는 것이 유리한가

연금 수령 기간은 단순히 “몇 년 동안 나눠 받을까”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매년 받는 금액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세금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소 10년 이상 나누어 받는 것이 기본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을 때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일정 기준 이상으로 나누어 받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최소 10년 이상에 걸쳐 분할 수령하는 경우, 연금으로 인정받으면서 위에서 말한 낮은 연금소득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10년보다 짧은 기간에 너무 크게 나누어 받으면, 세법상 혜택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연금 설계를 할 때 보통 10년 이상을 기본으로 놓고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간을 길게 잡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전체 퇴직연금 규모가 같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억 원을 10년에 나누어 받는 것과 20년에 나누어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10년이면 매년 1,000만원, 20년이면 매년 500만원을 받게 됩니다. 연간 수령액이 줄어들면, 세율 구간이나 과세 방식에서 유리해질 여지가 생깁니다.

또한 연금을 받는 동안 계좌에 남아 있는 금액은 계속 운용이 가능합니다. 예금, 채권, 펀드, 보험 등 여러 상품을 섞어두면, 남은 자산에서 운용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을 포함해 다시 연금을 받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운용 성과가 항상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수령 기간이 길수록 복리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커집니다.

수령 기간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점

연금 수령 기간은 단순히 “세금만 보고” 정하는 것보다, 실제 생활과 건강 상태를 함께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매년 필요한 생활비: 국민연금, 부부의 퇴직연금, 기타 저축, 임대소득 등 전체 수입을 모두 합쳐 본 뒤, 실제 생활비가 얼마만큼 필요한지 계산해야 합니다.
  • 다른 소득과의 균형: 사업소득, 이자나 배당소득, 임대소득 등이 이미 많은 경우라면 퇴직연금 수령액을 너무 크게 잡지 않는 것이 종합소득세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건강과 가족력: 수명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건강 상태, 가족들의 평균 수명 등을 참고해 대략적인 기간을 정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 연금 자산의 운용 계획: 위험을 크게 지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인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익을 기대해 볼 것인지에 따라 수령 기간과 금액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세금을 줄이는 기본 원칙들

퇴직연금에서 세금을 절약하는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방향만 잘 잡으면,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큰 틀에서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능한 한 연금 형태로 받는 것이 유리합니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그대로 부담하게 됩니다. 반면, 연금으로 나누어 받으면 퇴직소득세의 일부를 감면받고,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도 낮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연금 수령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면율이 높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별로 적용되는 연금소득세율도 비교적 낮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60대에는 5% 안팎, 70대에는 그보다 조금 더 낮은 수준 등으로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별히 큰돈이 당장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시금보다는 연금 방식이 세금 측면에서 크게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연간 연금 수령액 1,200만원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을 합쳐서 1년 동안 받는 금액이 1,200만원 이하라면, 비교적 낮은 연금소득세율을 적용받으면서 다른 소득과 분리해서 과세되는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범위 안에서는 세율이 3.3%에서 5.5% 정도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매우 가벼운 편입니다.

반대로, 사적연금 수령액이 1년에 1,200만원을 넘기면 선택지를 하나 더 고민해야 합니다. 종합소득에 합쳐서 일반 종합소득세율(6.6%에서 40%대까지 구간별로 적용)을 적용받을지, 아니면 16.5% 정도의 단일 세율로 따로 분리과세를 선택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소득 규모에 따라 유리한 쪽이 달라질 수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연금 수령액을 1,200만원 근처에서 조절하는 방식이 실질적으로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수령 기간을 길게 잡아 연간 금액을 낮추기

수령 기간을 20년, 25년, 30년처럼 길게 설정하면, 같은 자산이라도 매년 꺼내 쓰는 금액이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이렇게 하면 연간 1,200만원 기준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세금만 놓고 보면, 한 해에 많이 받는 것보다 여러 해에 나누어 조금씩 받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수령액을 너무 낮게 잡으면 당장 필요한 생활비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금 절약”과 “생활의 여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른 소득과의 관계도 함께 살펴보기

퇴직연금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은퇴 후 삶에서는 여러 가지 소득이 동시에 발생합니다. 이들을 함께 고려해야 전체 세금 부담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과의 관계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이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개인과 회사가 준비한 사적연금입니다. 세법에서는 이 둘을 구분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사적연금의 1,200만원 기준은 국민연금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국민연금은 따로 과세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만 합산해서 1,200만원 기준을 보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민연금도 소득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체 종합소득세를 계산할 때는 결국 모두 반영됩니다. 다만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1,200만원 기준”을 맞출 때 굳이 국민연금을 합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리가 없습니다.

임대소득, 사업소득, 금융소득과의 조합

은퇴 이후에도 상가나 주택 임대소득, 소규모 사업소득, 예금이자나 배당소득이 꾸준히 발생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소득이 많을수록 종합소득세율 구간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으면서 그 금액이 너무 크면, 전체 소득이 합쳐져서 세율 구간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퇴직연금 수령 계획을 세울 때는, 다른 소득 규모도 함께 살펴보고 “내가 어느 세율 구간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가”를 한 번쯤 고려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하다면 세무사나 재무 설계사와 상의해서 가장 부담이 적은 조합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연금 계좌가 있을 때의 순서와 전략

예전 직장에서 퇴직할 때마다 받은 퇴직금을 IRP 계좌로 옮겨 두었거나, DB형과 DC형, 개인연금 등을 여러 개 섞어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럴 때는 “어떤 계좌에서부터 먼저 인출할 것인가”도 작은 전략이 됩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연금으로 받을 때는 퇴직소득세 감면 혜택이 따르지만, 개인연금은 이런 감면 구조가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퇴직연금 쪽을 먼저 꺼내 쓰고, 개인연금은 조금 더 뒤로 미루는 방식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계좌마다 들어 있는 상품 구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계좌는 예금 위주, 어떤 계좌는 채권이나 펀드 비중이 많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기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되는 계좌부터 인출을 시작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자산이 담긴 계좌는 조금 더 오래 유지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시장 상황과 개인의 위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는 영역입니다.

제도와 세법은 변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기

퇴직연금 관련 제도와 세율, 감면 규정은 한 번 정해지면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 조금씩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기준으로는 가장 유리했던 방법이, 10년 뒤에도 그대로 최선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연금 수령 계획은 한 번 정해 놓고 잊어버리기보다는, 몇 년에 한 번씩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조정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금융기관에서 보내주는 안내문, 뉴스, 공식 자료 등을 통해 큰 변화가 없는지 한 번씩 확인해 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결정이라면,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내 상황에 진짜 맞는 방향인지 다시 점검하는 것도 좋습니다.

퇴직연금이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오래 일한 사람의 노후를 지켜주기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하지만 같은 제도 안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수령 시기와 기간, 연간 수령액, 다른 소득과의 조합 등을 차분히 살펴보면, 더 안정적인 노후와 세금 부담 완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조금씩 가까이 당길 수 있습니다. 먼 미래처럼 느껴지더라도, 원리를 한 번 이해해 두면 나중에 실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훨씬 여유 있게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