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만에 도착했을 때, 공항철도 매표소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줄은 길고, 표 종류는 많고,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헷갈리는데 제 앞사람들은 카드 하나만 찍고 쓱 들어가 버리더니 금방 사라졌습니다. 그때 직원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를 하나 보여주면서 이걸 사면 훨씬 편하다고 알려줬고, 그 카드가 바로 이지카드였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표를 일일이 사느라 헤매지 않아도 되었고, 편의점에서 물 한 병 살 때도 그냥 카드를 한 번 찍으면 끝나서 여행이 정말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만 여행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교통카드, 이지카드(EasyCard, 悠遊卡)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름은 교통카드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전자 지갑처럼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는 카드입니다.
이지카드란 무엇인가요?
이지카드는 대만에서 널리 쓰이는 교통카드이자 선불 전자 카드입니다. 카드에 미리 돈을 넣어 두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편의점이나 일부 가게에서도 결제할 수 있습니다. 대만 현지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카드라, 여행자가 가지고 다니면 현금 대신 쓰기 좋아서 지갑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 카드는 대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가 아니라, 이지카드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선불 전자 카드입니다. 그래서 은행 통장처럼 이자가 붙거나 하지는 않지만, 대신 충전과 사용이 매우 간단하고 빠릅니다.
이지카드 종류와 구매 방법
여행자가 주로 만나게 되는 이지카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기능은 거의 같고, 모양과 카드 가격만 조금 다릅니다.
일반 이지카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카드입니다.
일반적인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카드 가격: 보통 NT$100 정도입니다. 이 금액은 환불되지 않는 카드 보증금 비슷한 개념입니다.
- 최소 충전 금액: 보통 NT$100부터 충전 가능합니다.
- 처음 준비해야 할 금액: 카드 가격 NT$100 + 충전 금액 NT$100 정도로, 대략 NT$200이면 시작하기 충분합니다.
- 유효기간: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아도 바로 무효가 되지 않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 활성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여행 일정 안에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구입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많습니다.
- MRT(지하철) 역: 역 안의 고객 서비스 센터(서비스 데스크)에서 직원에게 이지카드를 사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발급해 줍니다. 일부 역의 발매기에서도 구매가 가능합니다.
- 편의점: 7-Eleven, FamilyMart, OK Mart, Hi-Life 등 거의 모든 편의점에서 판매합니다. 계산대에서 이지카드를 사고 싶다고 말하면 됩니다.
- 타오위안 국제공항: 공항철도(MRT) 역 창구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준비하기 좋습니다.
관광객이 주로 사용하는 일반 카드의 카드 가격 부분은 대부분 환불되지 않습니다. 대신 카드에 충전해 둔 사용 가능한 잔액은 환불이 가능합니다.
특별 디자인 이지카드
캐릭터나 그림이 들어간 한정판이나 디자인 카드들도 있습니다. 기능은 일반 카드와 동일하지만, 모양이 더 예쁘거나 독특해서 기념품으로 좋습니다.
- 카드 가격: 기본 카드보다 비싸며, 디자인과 한정판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환불: 특별 디자인 카드 역시 카드 자체 가격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구입처: 편의점, 기념품샵, 일부 백화점, 지하철역 등에서 판매합니다. 특정 캐릭터 카드나 한정판은 특정 기간이나 특정 장소에서만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디자인에 큰 관심이 없다면 일반 카드로 충분하지만, 여행을 기념할만한 물건을 남기고 싶다면 특별 디자인 카드를 하나 사서 기념품으로 가져오는 것도 좋습니다.
이지카드 충전 방법과 금액
카드에 돈을 넣는 것을 보통 충전이라고 부릅니다. 이지카드는 충전이 간단해서, 현금만 가지고 있다면 길을 걷다가도 금방 잔액을 채울 수 있습니다.
충전 단위와 한도
이지카드는 상황에 따라 NT$100 단위 또는 일부 기계에서는 더 세분화된 금액으로 충전할 수 있습니다. 보통 NT$100, NT$200처럼 둥근 금액을 많이 사용합니다. 카드에 넣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보통 NT$10,000 정도까지입니다. 여행 일정이 짧다면 너무 많이 넣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나누어 충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충전은 대부분 현금으로 이루어지며,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통한 충전은 가능한 곳이 제한적입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현금 충전 위주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충전 가능한 장소
충전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MRT(지하철) 역
- 고객 서비스 센터: 카드를 직원에게 건네고 충전하고 싶은 금액을 말한 뒤 현금을 내면 됩니다.
- 자동 충전기: 기계에 카드를 올려두고 화면 안내에 따라 금액을 선택한 뒤, 현금을 넣으면 충전이 완료됩니다.
- 편의점
- 7-Eleven, FamilyMart, OK Mart, Hi-Life 등 대부분의 편의점 계산대에서 충전할 수 있습니다.
- 카드를 내밀고 충전을 원하는 금액을 말한 후 현금을 내면 됩니다.
- 대만 철도(TRA) 일부 역: 역 내 창구나 기계에서 충전이 가능한 곳이 있습니다.
- 대형 마트 일부 지점: 까르푸(Carrefour) 등 일부 대형 마트 계산대에서도 충전이 가능합니다.
일정을 생각해 보면, 가장 편한 곳은 편의점입니다. 대만은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을 정도라, 이동 중에 잔액이 부족해도 금방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지카드로 할 수 있는 일들
이지카드는 이름처럼 교통에 가장 많이 쓰이지만, 실제로는 일상 결제에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교통수단에서의 사용
대중교통은 이지카드를 가장 활용하기 좋은 분야입니다.
MRT(지하철)
타이베이, 가오슝, 타오위안 공항 MRT 등 주요 도시의 지하철 대부분에서 이지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용 방법: 개찰구에 카드를 한 번 찍고 들어가며, 목적지 역에서 다시 카드를 찍고 나옵니다.
- 할인 혜택: 타이베이와 신베이 지역에서는 MRT와 버스 사이 환승 시에 일정 금액(예를 들어 NT$8 정도)의 할인 혜택이 적용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만 정확한 할인 금액과 조건은 시기와 정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내버스 및 일부 시외버스
타이베이, 가오슝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시내버스에서 이지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 탑승 방법: 버스의 종류에 따라
- 탑승 시와 하차 시 모두 카드를 찍는 방식
- 탑승 시에만 한 번 찍는 방식
어떤 방식인지 헷갈릴 때는 버스 앞쪽 전광판이나 안내문을 보거나, 다른 승객의 행동을 잠깐 관찰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대만 철도(TRA, 일반 기차)
대만 철도 중에서도 좌석 지정이 없는 통근형 열차나 일부 일반 열차 구간에서 이지카드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 사용 가능한 열차: 지정석이 없는 통근형 열차 등 일부 열차에 한정됩니다.
- 이용 방법: 개찰구 또는 플랫폼 입구에 설치된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들어가며, 내릴 때 다시 카드를 찍으면 됩니다.
- 좌석: 이 방식은 자유석 개념이라, 빈자리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서서 가는 형태입니다.
단, 좌석 지정이 필요한 특급열차 등에서는 이지카드만으로 탑승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열차는 별도로 승차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대만 고속철도(THSR)
고속철도에서는 이지카드를 개찰구에 바로 찍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쓰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신 이지카드의 잔액을 사용해 역 창구나 기계에서 자유석 승차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보통 고속철도는 미리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예매하거나, 별도로 고속철도 전용 티켓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지카드를 고속철도에서 쓸 일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경전철과 페리
가오슝 경전철 같은 일부 경전철 노선, 그리고 단수이–빠리 구간 페리나 가오슝–치진 섬 페리 등 일부 선박 노선에서도 이지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배를 탈 때도 교통카드를 찍는 모습은 처음 보면 조금 독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용법은 버스와 비슷합니다.
공용 자전거(YouBike 등)
타이베이 등 여러 도시에는 공용 자전거인 YouBike 같은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지카드를 이 시스템에 등록하면 대여와 반납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 등록할 때 현지 휴대폰 번호 입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일시 방문하는 여행자에게는 다소 번거롭습니다. 여행 중에 장기간 자전거를 쓸 계획이라면, 현지에서 임시 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지, 혹은 여권 번호 등으로 대신 등록 가능한지 현지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점과 서비스 업종에서의 사용
이지카드는 작은 액수 결제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에, 길을 다니면서 현금을 꺼낼 일이 많이 줄어듭니다.
- 편의점: 7-Eleven, FamilyMart, OK Mart, Hi-Life 등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른 뒤 계산대에서 카드를 찍으면 결제가 됩니다. 물, 음료, 간식, 도시락 등을 살 때 매우 편합니다.
- 마트·슈퍼마켓: PX Mart(全聯福利中心), 까르푸, 웰컴(頂好) 등 일부 마트에서도 이지카드로 계산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계산대 부근에 이지카드 로고가 있는지 확인하면 도움이 됩니다.
- 드럭스토어: 왓슨스(Watsons), 코스메드(Cosmed) 등 주요 체인에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살 때도 사용 가능한 지점이 많습니다.
- 패스트푸드·카페: 맥도날드, 스타벅스, KFC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 중 상당수에서 이지카드를 받습니다. 주문 후 계산할 때 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됩니다.
- 자판기: 음료 자판기나 일부 티켓 자판기에서 이지카드 결제를 지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관광지·박물관: 타이베이 동물원 같은 관광 시설, 일부 박물관이나 공원 입장료를 이지카드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입구 주변 안내판을 보면 이지카드 로고가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주차장: 일부 공영 주차장에서 주차 요금을 이지카드로 낼 수 있습니다.
- 백화점·쇼핑몰: 일부 매장, 푸드코트, 지하 식품관 등에서 이지카드 결제가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가게에서 무조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계산대나 입구 근처에 이지카드 마크가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보면 좋습니다.
잔액 확인과 환불, 분실 시 주의할 점
여행 중에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내 카드에 지금 얼마나 남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또 여행을 마칠 때 잔액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이 됩니다.
잔액 확인 방법
이지카드 잔액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 MRT 역: 개찰구를 통과할 때, 또는 자동 충전기 화면에서 잔액이 표시됩니다.
- 편의점: 계산대에서 직원에게 잔액을 확인해 달라고 하면, 단말기 화면에 표시해 주거나 영수증으로 보여줍니다.
- 일부 자판기와 단말기: 카드를 대면 화면에 잔액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드 뒷면에는 계정 정보나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잔액을 확인할 때 카드 정보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위험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다만,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등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환불과 잔액 정리
많이들 궁금해하는 부분이 여행이 끝날 때 카드에 남은 돈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 카드 가격: 처음에 지불한 카드 자체 가격(예: NT$100)은 기본적으로 환불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 충전된 잔액: 카드 안에 남아 있는 사용 가능한 잔액은 환불이 가능합니다. 보통 MRT 역의 고객 서비스 센터에서 환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수수료: 사용 횟수가 매우 적거나, 카드 발급 후 시간이 짧은데 바로 환불을 요청하면, 일정 금액(예: NT$20 정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제도가 운영된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규정은 시기와 정책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실제 환불 시 역 직원에게 최신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자 입장에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마지막 날에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남은 잔액에 가깝게 물건을 사서 거의 다 써 버리는 것입니다. 잔액이 아주 애매하게 남았을 때에는 작은 과자나 음료를 하나 더 고르면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습니다.
분실 또는 도난 시 대처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름이나 여권 번호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로 카드를 사용합니다. 이런 카드는 분실했을 때 잔액을 되살리기 어렵습니다. 한 번 잃어버리면, 현금을 잃은 것과 비슷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지카드는 다음과 같이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 지갑 깊숙한 곳이나 목걸이형 카드지갑 등에 보관해서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 사진을 찍어 기록해두는 것은 카드 번호 확인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분실 카드의 잔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장은 아닙니다.
- 큰 금액을 한 번에 넣기보다는, 며칠에 한 번씩 나누어 충전하면서 사용하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대만에 장기 체류를 하거나 현지에서 계정을 등록할 계획이라면, 정식 등록 절차를 거쳐 분실 시 잔액 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관광 목적의 단기 방문이라면 보통은 등록 없는 일반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행 중 이지카드를 더 편하게 활용하는 방법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지카드를 잘 활용하면 이동과 결제 과정에서 줄 서는 시간을 줄이고, 현금을 꺼내거나 잔돈을 받느라 정신없어지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일정을 짤 때는 대충 하루에 얼마나 이동할지, 편의점이나 간단한 간식에 얼마나 쓸지 가늠해 본 뒤, 처음에 너무 큰 금액을 넣지 말고 이틀 정도 쓸 정도만 충전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걷다 보면 편의점과 지하철역을 자주 지나치게 되므로, 잔액이 줄어들었을 때도 충전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 특히 출퇴근 시간대에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종이표를 사려는 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이지카드가 있다면 개찰구로 바로 향할 수 있어 이동이 훨씬 부드럽습니다. 편의점에서 물 한 병만 사도 이지카드를 내밀면 결제가 되는 덕분에,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 허리를 굽히는 일도 적어집니다.
이렇게 작은 카드 한 장이지만, 한 번 손에 익어 두면 다음에 다시 대만을 찾았을 때도 같은 카드를 꺼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습니다. 여행 중 쌓인 기억이 카드 안에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갑 속 한쪽에 오랫동안 보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